지리산 3사순례 3 – 화엄사

장마철이고 비가 온 뒤라서 안개에 싸여 있었지만, 대가람의 위엄에 압도되어 죄인인 양 한발 한발 내 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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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에서, 잘못했습니다(?)고 하고선 겨우 들어갔지만, 천왕문을 지나면서 가벼워진 발걸음은, 대웅전, 각황전을 보면서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전되듯 온몸을 타고 흐르는 법음을 들은 것 같다.

차례로 참배하고선, 각황전 석등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분이 위에 더 화려한 곳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적멸보궁, 계단을 올라야 해서 힘들다고 가지 않기로 했던 곳인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각황전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못 보고 올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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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심이 배어 있는 곳으로 알려진, 사사자 탑이 있는 곳이다. 탑의 사방에서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머리로 바치고, 중간에 비구니가 탑을 이고 있는 형상이다. 연기조사의 어머님이라고 한다. 탑의 정면엔 탑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은 체 차를 올리는 모습이 보이는데,연기조사가 어머님께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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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알려졌는데, 1979년에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 白紙墨書 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사경이 발견되면서, 연기조사는 황룡사 출신 승려이며 경덕왕(742~765) 때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고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자료는 인도에서 온 승려라 소개를 하고 있어서, 무지한 사람으로선 혼란스럽긴 하지만, 중요한 건 화엄사의 위엄은 저절로 고개 숙이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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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밖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선, 이제 집에 가자, 내일 산에 가야 한다고 사정을 했는데, 자꾸 산에 가자 그러면 지리산 종주 들어간다며 협박을 하더니, 이왕 3사 순례했는데, 방생까지 해야 구색을 갖춘다면서, 사우나 가서 샤워하고 남원 광한루 앞에 방생을 가자고 한다. 그러면 집에 보내 준단다.

방생하려면 물고기 사야 하잖아 했더니, 한방 쥐어박는다. 알려면 제대로 알라 한다. 요즘은 생태계 파괴하고, 오히려 물고기 죽이는 일이라서, 실제 물고기를 방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식이 뽀록남을 감수하고서, 집에 가야 함을 강조했지만, 자다 말고 실려왔기 때문에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샤워하고선 광한루로 향했다. 거리상으론 얼마 안 되어서 바로였다.

사랑의 무지개다리로 이름 붙여진 다리는 예전엔 분수가 솟았다고 한다. 정부의 에너지절약 정책으로 지금은 분수를 가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야경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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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에 가나 했지만,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작전에 말린 듯한 느낌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계획되고, 허락된 납치(?)였다는걸 여기서 알게 되었다. 끈적하게 달라붙더니, 방생까지 마쳤으니 술 한잔해야 한다고 한다.

술 마시면 걸어서라도 간다니까. 술을 안 마시는 대신 강진의 다산초당을 가잔다. 평소 가 보고 싶었던 곳이라면서, 선택을 강요한다. 똑똑한 네비에 찍어보니까. 저기 땅끝이다. 멀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질 않는다. 결국, 강진 다산초당을 다녀오는 것으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이 끝났다.

생각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내가 가는 길 확인하고, 의지를 새롭게 각인한 시간이었다. 나태해져서 가는 길 잊고 있었는데, 화엄사에서 느낀 법음에 천리만리 멀어지던 마음을 바로잡았다. 순간순간에 통찰할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순간순간에 나태해져 감을 알아채지 못함은, 지혜롭지 못한 결과라, 하소연할 때도 없다. 정신 못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같이 간 친구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빛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목을 잡을 사람이 될지도 몰라, 어쩌면 미워하게 될 것 같은 미안함이 있다. 머리를 깍진 않았지만,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주변의 사소함은 묻어버린 지 오래다. 새삼 사라진 흔적을 다시 꺼내볼 만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 마음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함에 가슴 아프다, 당신도 내 마음 같길 기도하면서, 온 마음으로 사죄한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고 싶은, 무지한 사람이라 온전한 마음을 품지 못함을 용서하시고, 부디 금생에 성불하시길 법계의 모든 신령함을 빌어 함께 소원한다.

“지리산 3사순례 3 – 화엄사”에 대한 13개의 댓글

  1. 그러고보니 저도 아리수님과 같이 담장 밖에서 안이 궁금해 힐끗
    힐끗 옅보기만 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ㅎㅎㅎㅎ(^^*)
    금강경 구절의 “응무소주이생기심” 처럼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시길 마음모아 소망합니다….()…..

  2. 지리산을 다녀오셨군요. ^^
    전 아직 지리산 구경도 못 해봤는데.
    완전 촌스럽죠? ^^;
    다리에 힘빠지기 전에 함 가봐야는데 말예요. ㅋㅋ
    짧지만 몸도, 마음도 알찬 여행이 되셨던 듯 싶어요.
    완전 부럽, 배아파요. aryasu님…-_-;;;;;

    1. 사실은, 저도 근처에만 몇 번 가봤지 이름있는 곳엔 발 도장 못 찍었답니다. –; 언제고 종주 한번 하는 게 작은 바람인데, 될지 모르겠습니다. 웃음꽃님 살짝 배 아프시죠.? 짧은 여행이라서 그런지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

  3. 해남 대흥사는 가보았지만 화엄사는 아리수님 덕분에 순례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아리수님 말씀처럼 물같이 바람같이 순리대로 살다가는 것이
    우리네 본분이겠지만, 그 본분을 늘 거스르고 평상심으로 살지
    못하는 인생인지라 탄식 썩인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예전에 절이 그냥 좋아서 절로 절로 다니며 살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삼천배며, 참선이며, 탱화에 단청공부를 한답시고 멋도 모르고
    쫒아다녔 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한데, 아리수님 덕분에 세월에 쫒겨서
    여기까지 와버린 자신을 잠시나마 되돌아 보고 갑니다.
    休 휴 休~ 잠시 잘 쉬었다 갑니다.(^^*)

    1. 아직 담장 밖에 있다 보니, 안이 궁금하기도 한데 쉽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답니다.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면 걸림이 없으려나요.? 좋은인연님 집에서 맘껏 취하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

  4. 옛날에는 산에 가도 사찰은 건성 지나쳤는데 자연 사진찍을 맘도 없었고. 그런데 요즘 마음이 달라집니다. 앞으로 사찰 사진을 많이 찍어 보려구요.^^

    1. 네, ^^ 제가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는 사진이란 것에 그리 관심이 없었고, 취미로 하시는 분들 이해하기 어려웠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좋은 것 골라내고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구경도 하고, 배우기도 하는데, 조금씩 알려고 할수록 더 어려워져서, 사진을 찍는다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 오늘은 모처럼 해가 났습니다. 이번 주는 내내 해가 나지 않더니만, 갑자기 나오니까. 적응이 안 됩니다. ^^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5. 가끔 뜻밖의 여행에서 뜻밖의 소득을 얻어가지고
    오는 건 아마도 aryasu님께서 깨닫는 것 같는 그런 거 아닌가해요~
    암튼 무엇보다도 더위 잘 이기세요!!!

    1. 나름 잘~ 한다는 자만감이 의식을 지배하다 보니,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상으로 겨우(?) 돌아온 오늘 새삼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납니다. 어쩌면, 납치(?)당하길 원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 오늘은 종일 비가 옵니다. 덕분에 산에 다니기 수월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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