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오 / 산골의 봄

고로쇠가 끝나고, 생강꽃봉오리가 나올 무렵 산에서 만나는 새순이 초오다. 초오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생강꽃(산동백)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고로쇠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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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로쇠는 늦게 나왔지만, 초오 새순은 예년과 비슷하게 나왔다. 지금부터는 한철 괴롭혔던 자리를 정리하고, 감자 심을 준비를 한다. 곰취 취나물 밭 겨우내 자랐던 잡초를 제거하고, 밭 주변정리 태우기, 거름 내고 밭 갈기 등 본격적인 산골의 봄이 시작되었다.

온 마을이 봄 맞이하느라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흔적들이 날아다닌다. 우리 집은 배설물 비료를 감자에만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밭두렁 태우는 냄새랑 섞여서 묘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

멀리 골짜기 끝 암자엔 새로 온 식구들의 집 안 청소가 끝나간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계절도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버리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한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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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오, 약초로 사용하는 부분은 뿌리를 주로 사용하는데,

“초오는 두통, 복통, 종기, 반신불수, 인 사불성, 구안와사에 쓰인다. 풍습증으로 인한 마비증상이나 인사불성, 류머티즘성관절염, 신경통, 요통, 파상풍 등을 치료하며 배가 차가워서 생기는 복통 등에 응용된다. 약리작용으로 진통, 진정, 항염, 국부마비완화 작용이 있으며 다량 복용시 심장운동흥분작용이 보고되었다. [출처:두산백과사전]”

일부 연구에서는 초오의 독성 중 성분에 대한 의심도 있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약초라고 한다. 술을 담가 나눠 먹다가 집단중독 현상을 보였다는 보고도 있고, 심장마비현상으로 장기간 심폐소생술을 요했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고 한다. 해서, 산에 가더라도 초오를 보면 도망가야 한다. 짐승이 못 먹는 것은 사람도 못 먹는다

봄에 만나는 새순이라고 나물로 알고 함부로 먹으면 큰일 난다.

봄소식 –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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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이 좀 더 멀리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자연의 흐름은 순응할 수밖에 없고, 기대지 않으면 의지하고 살 수가 없다. 욕심이 과해서인지 바람으로 끝난다.

양지쪽 담벼락 아랜 쑥이 제법 올라왔다. 파릇한 봄옷을 입었지만, 채 가시지 않은 추위를 막으려고 하얀 털옷을 걸쳤다. 밤엔 영하 4~5도로 떨어지지만, 이 정도 추윈 이겨낼 수 있는지 어제보단 제법 커 보인다. 냉이도 달래도 보이긴 하지만 아직 음지쪽은 깊게 얼어 있어서 밭일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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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에 곰취, 취나물 씨앗을 뿌렸지만, 씨앗 상태가 안 좋아서 지난주에 새로 뿌렸다. 씨앗을 말리면서 비를 맞히고, 관리를 잘못해서 그렇다. 잠깐 깜빡한 게 대가를 치를 만큼 상태가 나쁘다. 옆 동네 할아버지가 산에서 채취한 100% 자연산이라 강조하셔서 제법 비싼 가격을 치렀다.

곰취, 취나물 씨앗을 넣기엔 적당하지만, 감자를 심기엔 아직 이르다. 예년엔 지금쯤 감자 심을 준비하느라 밭을 뒤집고 있었는데, 올핸 좀 더 늦어질 것 같다.

봄소식 – 버들강아지

야지는 벌써 버들강아지 소식이 있었지만, 오후에 개울 건너 오미자밭 순찰(?)하던 중 만났다. 그동안 눈에 안 뜨이더니만 나온 지 제법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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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을 뽐내거나,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를 품은 것도 아닌데, 버들강아지를 보면 가슴이 아린듯한 느낌에, 한동안 의미 없는 웃음 짓게 된다. 오래된 기억을 생각해 내듯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추억할 만한 기억이 있음도 아니고, 가슴 아픈 사랑의 흔적도 없지만, 막연한 그리움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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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되어 버린 일상에서, 오랜 겨울을 이겨낸 새순에 대한 경외심일까. 버들피리를 만들던 머지않은 내일을 생각하게 해서 그러는 것일까. 한 번도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묘한 감정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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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야산엔 아직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제법 개울의 얼음도 녹아내리고 양지쪽 담벼락 아래는, 겨울을 이겨낸 풀들이 모양을 다듬어 간다. 며칠 더 지나면 쑥이 올라오려는지 한낮은 제법 따뜻한 볕이 내린다.

고로쇠는 경칩을 기준으로 2~30일 전부터 1~2주 뒤까지 나오는데, 올해는 경칩을 기준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뭔 심술인지 봄철 제법 유용한 수입인데 기대가 포기로 바뀌었다. 이젠 고로쇠를 찾는 사람도 없는데 많이 나오면 속만 상한다.

오늘은 예년 수준 정도 나와서, 돈만 받고 못 보냈던 곳에 우선 보냈다. 일기 예보 상 내일도 오늘 수준은 될 것 같지만, 심술이 안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연리지 / 연리목, 사랑나무

우리 지역엔 사랑나무가 많다.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다 보니, 붙어 버리는 나무가 많아지는가 보다.

특히 단풍나무가 주로 보이는데, 한 뿌리를 사용하면서 따로따로 자라다, 중간에서 붙어 버린다. 소나무도 가끔 보인다. 다른 뿌리를 사용하다가 중간에서 붙어 버린 나무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나무는 단풍나무인데, 다른 뿌리를 가진 두 그루의 나무가 바위를 사이에 두고서 자라다가 중간에서 만나 붙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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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나무는 잎은 느티나무처럼 생겼는데, 이름은 모른다. 각각 다른 뿌리를 가진 두 그루였던 것 같은데, 뿌리부터 3~4m까지 붙어서 자라다가 조금 떨어져서 위에서 다시 만나 한 몸으로 자란다.

연리목, 연리지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 너무 가까이 자라면서 성장한 줄기가 맞닿아 한나무 줄기로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말한다. 비슷한 현상으로 연리지 連理枝 현상이 있는데 연리지는 가지가 연결된 것이고 연리목 連理木 은 나무줄기가 연결된 현상으로 모두 희귀한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서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끼리 연리가 가능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고로쇠 수액 / 고로쇠 수액 판매

올해는 많이 늦은 편이다. 지난 토요일에 물이 반짝 나더니만, 연이틀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다른 지역도 날씨 때문에 올해는 기대 안 한다는 이야기기 들린다. 봄철 산골의 유일한 수입원인데, 다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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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을 전후로 수액이 나오는 나무는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그중 고로쇠나무 수액이 가장 맛이 좋다. 고로쇠나무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지역은 산에 자생하는 왕고로쇠나무에 속한다.

양지쪽보다는 음지쪽, 비가 오면 물길이 나는 돌무더기 쪽에 주로 자생한다. 그러다 보니 수액 채취작업이 아주 힘들다. 바람이 눈을 몰아 골짜기로 밀어 넣는데, 주로 이런 곳에 고로쇠나무가 있어서, 어떤 곳은 허리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우리 지역은 해발 800~950m 사이에 80% 이상 살고 있어서 수액이 많이 나는 편은 아니다. 대신 당도가 높아서 단맛이 강하다. 나무의 크기는 주로 한 아름 정도, 큰 나무는 세 아름 정도 되기도 한다. 우리 집은 둘레가 60cm보다 작은 나무는 수액을 채취하지 않는다. 작은 나무는 나무를 보호하자는 생각도 있지만, 수액의 단맛도 약하다. (산림청에서 가슴높이 지름 10㎝ 미만 수목에서는 수액 채취를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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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서 처음 고로쇠 수액을 먹어본 사람들은, 가끔 항의 전화 하기도 한다. 설탕을 얼마나 넣어서 이렇게 달 수가 있느냐고. 우리 집에서 먹을 때하고 맛이 다르다면서, 사실은 우리 집에서는 그늘에 보관하기 때문에, 물이 차가워서 단맛을 잘 못 느끼지만, 가져가서 집안에 보관하면, 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로쇠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단맛의 정도가 다르지만, 우리 지역은 특히 단맛이 강한 편이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고목에서 나는 수액이라 나무 특유의 향과 맛이 배어 있다.

고로쇠 수액의 채취/관리/판매에 대한 엄격한 관계 기관의 관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이물질을 섞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 한 해만 받고 말 거라면 모를까. 대를 이어오면서 수액을 채취하면서 살기에 양심을 팔지는 않는다.

올해는 부지런히 산을 오가지만, 계절이 더디 가다 보니 마음만 급하게 만든다. 이번 주중에 비가 오고 난 뒤엔 본격적으로 고로쇠 수액이 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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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 수액 판매
한 말(18L) 5만 원, 반 말(9L) 3만 원

택배비 5천 원 별도(택배비는 포장단위로 부가)

 

010-3052-2792, sangol@aryasu.com

기타 자세한 문의는 여기에 댓글 남겨 주시거나, 전화로 해 주시면 됩니다.

백운동 해돋이 2012

한동안 춥다는 핑계로 꼼짝 않고 있었더니만 몸무게만 늘었다. 한번 게으름 피우기 시작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하는 버릇 때문에 늘 후회를 하면서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만 투덜거린다.

지금 시기에 해야 할 일들은, 오미자 넝쿨정리 마무리, 고로쇠 받을 준비 등 시간을 다투는 일들만 남았는데 아직 몸이 굼떠서, 꼼지락거리고만 있다. 멀리 높은 산에 아직 눈이 남아 있지만, 해마다 눈이 없었던 적은 없었는데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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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관광호텔 쪽에서 바라본 해돋이

신년 맞이 해돋이를 가려고 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이 안 보여서 그만두었다가. 며칠 전 큰맘 먹고 다녀왔다.

우리 마을은 가야산이 가로막혀서 다른 지역보다 해돋이가 늦다. 가야산 뒤편 수륜면 백운동 쪽으로 가면 산이 낮아서 일찍 해돋이를 볼 수 있다.

가야산은 해인사 쪽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백운동 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등산하는 재미도 볼거리도 백운동이 더 좋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다. 늘 보던 것은 일상화되어서 별 반응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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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래가 가야산 정상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이곳은 그냥 보인다. 답답한 마음도 순간에 사라진다. 가끔은 이렇게 몸도 마음도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 하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는 것도 바쁜 일에 속하는 것인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늘어진다.

내일부터는 고로쇠 받을 준비를 하러 산을 둘러보러 간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첫날은 며칠을 고민하고 미루다 움직인다.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뜬다

2011년도 며칠 안 남았다. 한미 FTA 날치기, 10.26 부정선거, BBK 등 수많은 숙제를 남기고, 또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지만, 두고두고 우리의 삶을 얽어매어 힘들게 할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식 속에 뚜렷하게 살아날 것이다.

2012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하지 않으면, 예측 가능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하지만, 이젠 예측 가능한 미래가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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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상주인원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일할 수 있는 힘은 자꾸만 줄어든다. 부가가치가 높은 농사를 짓거나,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고 하지만, 구멍가게와 백화점이 경쟁이 되는가.?

자급자족해서 먹고 산다면, 주변과 문화에 단절된 상태에서 홀로 산다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부딪히면서 하나의 생각에 공유하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곱씹어 받아들이거나,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언쟁과 폭력이 오갈지라도, 어울림 속에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분노한다.

호기를 호기로 살릴 줄 모르는 것들에게 분노하고, 스스로 도 떳떳하지 못해서 비밀로 날치기나 하고, 공정하고 선명해야 할 선거조차 특정 다수의 이익을 위해선 변칙/부정도 가능하고, 거짓말과 사기가 삶 전부인 것들에게 분노한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비겁함에 더 크게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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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또다시 손모가지 작두로 잘라 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먹게 하면 안 된다. 가슴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한겨울 따스한 햇살 정도면 된다.

너무 욕심이 과하다면, 그저 같이 어울려 줄 수 있기만 해도 좋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내서 다시 산을 오를 수 있다.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뜬다.
상식과 보편이란 것에 진리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 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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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은 항상 탐욕과 성냄을 일어나게 한다. 탐욕과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에는 항상 어리석음이 같이 하지만 그 경우 어리석음의 역할은 종속적인 것이지 주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두 가지 마음의 경우에는 어리석음만이 해로운 뿌리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다. 이 두 부류의 마음에서 어리석음이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에 ‘어리석음만이 함께 하는 마음(momuha-citta)’이라고도 부른다.

이 2가지 가운데 하나는 의심(vicikicch?)과 함께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들뜸(uddhacca)과 함께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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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원하는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어리석음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기쁜 느낌(somanassa)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은 대상도 원하지 않은 것으로 경험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만족한 정신적인 느낌(domanassa)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아가서 마음이 의심이나 들뜸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대상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들 두 마음과 연결된 느낌은 중립적인 평온한(upekkh?) 느낌인 것이다.

평온이 함께 하고, 의심과 결합된 마음 하나 
평온이 함께 하고, 들뜸과 결합된 마음 하나
이들 2가지는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1장§6.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초기불전연구원]

김장 / 김치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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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좀 많이 담게 되었다. 식구가 늘어난 것도 아닌데, 작년보다 50포기를 더 담갔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생활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공론(?)이지만, 올해 배추가 유난히 맛있다.

모종을 사올 때 비싼 것을 샀더니만, 한 아름에 몸무게가 7kg이나 되는 놈도 있다. 큰 배추는 맛이 없다고 했는데, 품종개량이 잘되었는지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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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꾸준히 땅심을 기른다에 중점을 두고 화학비료, 농약을 배제하고 유기농 비료, 황토, 석회 등으로 땅심을 기른 결과가 이제 나타나는지, 배추 품종이 본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배추가 너무 크다. 작년보다 두 배는 더 크다.

김장을 해도 나는 특별히 하는 일 없다. 배추 날라다 주고, 통에 담아서 냉장고나 장독까지 들어다 주는 게 전부다. 그래도 옆에서 거들어야 하는 게 점심때 갓 담은 김치에 싸먹는 수육 때문이다. 먹는 것에는 약해져서 소심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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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김장은 했지만, 늦은 글 올리는 이유는, 비도 오고 뭔가 먹고 싶기도 한데 집에 아무도 없다. 혼자 찾아 먹자니 괜히 짜증 나고, 저 무시무시한 작업을 하고 싶지만, 맛이 없을까 봐 못하고 심술이 잔뜩 나서 씩씩거리면서 온 집을 뒤집고 다니다가 김장 때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다가 정리를 해본다.

계절을 잊은 쑥갓 /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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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피는 시기는 아닌 것 같은데, 봄에 심어놓은 것에서 새순이 돋았는지,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자랐는지 모르지만, 계절의 흐름을 잊은듯하다. 다른 놈들은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고 겨울잠에 들었는데, 양지 바른쪽이라 착각을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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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지혜롭고, 현명해지기를 바라지만, 그 순간에 무뎌지고 둔해져서 밋밋한 일상이 되어버리곤 하다가, 어느 순간 ‘그래, 이거야’를 외쳐 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멍청한, 아둔한 생각을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양 우쭐대다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거다. 그리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젠 안 속는다고 하지만, 결국 속고 만다. 알고 있음에 속고, 보고 체험한 것에 타협하고 만다.

쑥갓은 꽃을 피워 나름 화려함을 뽐내지만, 가을의 마지막 몸부림에 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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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재촉하는 비님이 오신다. 올해 마지막 비가 될지 모르지만, 방안에서 하루 더 뒹굴게 편하게 왔으면 좋겠다. 부슬부슬 내리는 촉촉한 느낌에 마음까지 풀어져서, 한발짝도 움직이기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