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절집 근처에서 나고 살았지만, 그 담장이 워낙에 높다 보니 근처엔 가지도 않고 있다가, 스물을 넘기고 나서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를 접했다.
‘물같이 바람같이…,’ 이 말에 감전되듯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몇 날 며칠을 뒹굴다, 높디높은 절집 담장을 넘었다. 아버님과 도반처럼 지내시는 선사님을 찾아 뵈었는데, ‘씰~때 읍꾸로 벨꺼 아이~다, 거냥 잘무꼬 잘살믄 댄다’ 이거였다.
감정을 속으로 감출 줄 모르는 나는, 울걱거리기만 하다 돌아왔었다.
‘저런 땡초를 다들 왜 그렇게 챙기는지 몰라, 뭣도 모르는 땡초를…,’,
‘하여간 정신 나간 사람들 천지야’를 되새기면서.
그 후로의 삶은 온통 ‘물처럼 바람처럼’이 전부였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마음 챙기기 공부가 지금도 담장 밖에 있다. 순간순간에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라고 연습도 해 보지만, 그 순간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보편과 상식이란 부분에서 나는 등외에 있다.
등 안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더 멀리 튕겨져나갈지는 모른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걸 아는 순간까지는, 큰스님 소리 못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땡초가 마냥 헛소리만 한 게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감사하고 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바른 길임을 인지하는 순간이 지금(iha) 이기를.
고려말기의 선승이자 다인(茶人)이었던, 나옹혜근(懶翁慧勤)선사의 선시이자 불교가사. 호는 나옹이고 혜근이 법명이다. 화상(和尙)은 일반적으로 덕이 높은 스님을 공경하는 뜻으로 존대하는 이름이다. 불교용어사전에는, 화상(和尙)은 옆에서 시봉해야 할 은사(恩師)스님 및 친교사(親敎師)를 말함 이라고 나온다.
흔적 따라 왓습니다..^^
넘 좋은 글 맘에 새기고 갑니다..^^
편안한 글이네요..
주말도 좋은 시간 갖으시길요..^^
감사합니다.
모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부딪혀 둥글 해지기는 커녕
쪼개져 다른 모가 생겨 버리니,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자연처럼 살아가는 게 바르게 사는 것 아닐까요?
고로쇠 수액 채취하는 사진 보며, 도시에 찌든 삶이 문득 지겨워집니다.
좋은 글,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다시 돌아온 산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언제쯤 그 모습 닮아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