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라서, 먹고 사는 것에 연관된 일이 아니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한군데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근처를 벗어나지 않다 보니, 사람이 많은 곳이나 낯선 곳은, 아주 큰맘 먹고 움직이지 않는 한 그냥 참는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청승을 떨고, 안개까지 구색을 갖춰 주는 바람에, 심란한 마음으로 밖을 보다가,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차 키를 집어든다. 딱히 정하고 나선 건 아닌데,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들어선다. 화엄사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집에선 두 시간 걸린다, 도로사정이 나쁘면 한심 푹 자고 일어나야 되고. 가는 길이 외길이라, 중간에 빠지는 일이 없이 곧장 화엄사다.
전국적으로 심술을 부리는 것인지, 내가 가는 곳만 그런 건지, 두 시간 남짓 가는 길에, 햇볕이 났다가 비가 내리고, 추웠다가 더웠다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겨울옷을 챙겨입고 나서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꽃이 다 떨어진 벚꽃 길에 안개까지, 별 예쁜 구석은 없었다. 이 시기가 좀 어정쩡한가 보다.
인사부터 하란 가보다 싶어, 그냥 고개 푹 숙이고, 큰 법당으로 갔다. 차례대로 다 들리곤, 똑딱이로 주변을 담는다. 구석구석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처음 왔을 때 들렸던 법음(?)을 찾기도 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예불이 끝난 시간이라 그런지, 모처럼 경내가 조용하다. 법당 안에서 있을까 하다가 갑갑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큰 법당을 바라보는 곳에 앉았다. 안개 때문에 주변 전각들만 눈에 들어와서 그런지, 어수선하지 않아서 좋았다.
오랜만에 평안함을 느껴본다. 뭐가 그리 힘이 드는지, 미련도 후회도 없는데.
병도 큰 병이 들었는지, 여기만 오면 편안해진다. 속에 있던 찌꺼기까지 사라지는 듯한 편안함이 있어서, 여길 자주 찾는지 모르겠다. 누가 들으면 또, 머리 밀자고 난리겠지만, 안 그래도 짧은 머린데, 더 밀면 모양 안 나서 안 된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매달 한두 번씩은 다녀왔었는데, 그 이후론 못 갔다. 싹 잊고 지내다가, 누가 불렀는지 어제 다녀왔다. 부른 사람(?)은 못 만나고 왔지만, 주름 접혔던 맘은 조금은 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