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소나기가 한차례 내리고 나더니 더위가 조금 가셨다. 여름도 중간으로 접어들었는지, 며칠 전부터 잠자리가 보인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오는지, 초등학교 방학을 맞춰서 나와선 조카 녀석들의 밥이 된다. 잠자리 잡는 방법을 연구해서 양파 주머니에 한가득 잡는다고 벼르고 있는데, 생각대로 잡혀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매미만 나오면 여름 분위기 난다.
어릴 적 집 옆에 큰 호두나무가 있었는데, 방학 때면 한낮의 놀이터였다. 호두나무는 오르기가 쉬워서 초등학교 들어가지 않은 애들 말고는 다들 올라가서 놀았다. 익지 않은 호두를 까먹는다고 손이 새까맣게 물이 들기도 하고, 매미 잡는다고 매달려서는 누가 더 나무를 잘 타나 내기도 하면서 한참을 놀다가, 냇가로 달려가곤 했었다.
냇가에선 방울토마토 크기의 감자로, 감자산굿을 해 먹는다. 감자산굿은 돌을 쌓아서 이글루처럼 만든 뒤에 불을 땐다. 나무가 다 타서 숯이 될 때쯤 자갈돌도 구워지게 되고, 이때 살짝 무너뜨려서 속에 감자를 넣는다.
감자를 넣고 무너져 있던 자갈들을 감자 위에 덮어서 그대로 두기도 하고, 김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흙으로 다 덮어 버리기도 한다. 흙을 덮을 때는 살짝 물을 붓기도 하는데, 이때는 흙으로 꼭꼭 덮는다.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른데, 그날의 대장 맘이다.
자갈을 구워서 하는 방법이라서 감자가 크면 익지 않아서, 작은 감자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엔 먹을거리가 귀해서, 큰 감자는 허락 없이 가져가는 것은 어려웠다. 어쩌다 큰 감자 몇 알을 가져가는 날에는 대환영이다, 대장 다음으로 감자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
감자산굿을 할 때는 돌무더기를 잘 쌓는 게 중요한데, 이 일은 대부분 대장이나 경험이 많은 형들이 했다. 대장에게 잘 보이면 돌 쌓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기본뼈대만 세워주고는 자갈돌을 주워 올리라고 한다. 그러다 제법 모양을 갖추고 경험이 쌓이면 처음부터 시켜보고, 잘하면 몇 번 더 시켜주고, 다음부터는 대장 부재 시 대장 노릇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돌을 잘 쌓을 때까지는 함부로 대장흉내도 못 낸다. 애들이 안 따라 준다. 다른 이유는 없다. 감자가 안 익는다.
감자를 덮어 놓고는 물속에서 퐁당거리다 추워질 때쯤, 감자도 알맞게 구워지게 되는데, 꺼내 먹는 방법이 좀 희한하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지만, 봉긋하게 만든 감자산굿을 그날의 대장이 발로 밟아서 뭉갠다. 그러고 나서 감자를 골라 먹는다.
흙으로 덮은 날은 깨져서 흙이랑 범벅된 감자도 나오는데 이런 것도 다 먹었다. 안 먹으면 다음번 감자산굿할 때 참석 못한다. 요즘 말도 따 당한다. 한번 찍히면 회복하는데 오래 걸려서 대부분 그냥 먹는다.
따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불참명령이 떨어졌어도 감자산굿 한다고 하면, 엄마 몰래 큰 알을 몇 개 더 가져가는데, 그날로 바로 사면(?)되어서 대장의 귀여움을 받는다. 나는 동생 둘을 달고 다녀서, 할당량이 다른 애들보다 많은 편이라 감자를 가져갈 때마다 엄마와 대장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어린 동생들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 흙이 묻었어도 되도록 내색 안 하고 요령껏 털어내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우리 마을만의 이해하기 어려운 전통(?)이 아니었나 싶다. 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동생보다 5~6살 어린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우리 마을에선 이런 놀이가 사라졌다.
요즘은 씨감자가 좋아서, 알이 작은 것들은 거의 없다. 어쩌나 나와도 대부분 다시 묻어 버린다. 양도 적지만 가져와도 딱히 다른 용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감자를 캐면서 어릴 적 기억이 나서, 작은 감자를 주워 모았는데, 한 바구니 정도 되었다. 감자를 보더니 동생은 대뜸 애들 감자산굿 해줘야지 한다. 주말에 수박 한 통 들고선 애들이랑 냇가에서 한참을 놀다가 왔는데, 애들 말이 아빠만 신나서 먹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났는지, 이 놀이(?)를 알려 주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조카 녀석들은 감자를 야외에서 구워먹는 특이한 방법을 배웠다.
본래 이 방법은 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산에서 감자를 익혀 먹는 방법이란다. 따로 솥이나, 물을 가져가지 않더라도 감자를 맛있게 익혀 먹는 방법을 찾다 보니, 이런 방법들이 나왔을 것 같다. 아마 이 방법은 어느 순간 짠~ 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름방학만 기다려졌던 이유는, 감자를 장마 전에 캐는데 방학 때쯤이면 장마가 끝나고 감자를 마음 놓고 먹어도 될 만큼 풍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2~3주 정도 늦게 감자를 캔다. 감자는 100일 만에 캔다는 분들도 있지만, 감자를 심어서 캐는 시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감자가 알이 차면 순이 누렇게 변한다. 감자가 다 자랐다는 신호다. 다음 주 말쯤 조카 녀석들 불러서 감자를 캐기로 했다.
혹시 청송 어느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분 아니십니까? 글의 내용이 저의 어린시절하고 꼭 같습니다. 저도 국민학교에서 돌아오면 온 동네 오빠,언니,동생들이랑 산으로 소꼴 먹이려가서 소는 산에 풀어 놓고 감자산굿해놓고 땀이 뻘뻘나도록 신나게 놀다가 감자산굿 봉우리를 발로 뭉개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우리아이들 셋이랑 친구아이들 둘을 데리고 산,들이 있는 곳에 갑니다. 지난 달 부터 한달에 한번 집에 있는 밥,반찬 싸가지고 부담없이 가기로 하고 갔었는데 아이들은 마음대로 뛰어 놀게하고 우리는 냉이랑 쑥을 뜯었습니다.저도 정말 좋았지만 아이들이 산으로 계곡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산, 들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 생각하다가 어린시절 감자구워 먹은 일이 생각나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동네 막내여서 생각이 긴가민가했는데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게 감자산굿이란 이름이 있다는 것도 오늘 알게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숲길님 방문 감사합니다. ^^ 저도 감자산골인지, 산꽃인지 헷갈렸는데요, 감자산굿이라고 한답니다. 발로 밟아 뭉개는 건 같았나 봅니다. 아마, 달궈진 뜨거운 돌이라 그렇게 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여긴 경남 합천이란 곳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 고향이시군요. 만남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
^^ 글을 읽는 동안 매미소리와 감자익는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하네요. ^^
감자산굿은 처음 들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워요. ㅎ
저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
웃음꽃 님도 여름방학 하시면 놀러 오세요, 감자산굿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 드릴게요. 수박 한 통 물에 담가놓고 감자 익기를 기다리는 것도 재미납니다. 그런데 예전의 맛이 날까 몰라요. ^^
오~ aryasu님,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
기회가 된다면 놀러가고 싶은데
올 여름에 갈 수 있을까 몰러요. ㅠㅠ
기회는 올 여름만 있는 건 아니죠? ^^;
네, 언제든 근처에 오실 일 있으시면 들리세요. 웃음꽃님 좋아하시는(?) 오미자, 머루, 벌꿀로 담근 술도 있습니다. ^^
“감자산굿”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아리수님에게 추억이 깃든 소중한 단어 같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그동안 제가 여름을 타는지 블로그에 소홀해진 탓에 자주 놀러
오지를 못햇습니다.
손님이 오신다고 하셔서 사무실에 오전에 나왔다가 오랜만에
여기저기 블로그랑 카페에 들러서 모처럼 인사드리고 있습니다.
정성들여 키우신 햇감자를 수확하셔서 선물로 나눠 주신다는
글을 읽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ㅎㅎ
귀한 감자만큼이나 아리수님의 고운 마음이 참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시는 것 같아서 올 한해 농사는 내내 풍성하시고 풍년이 들도록
마음모아 소망 해 봅니다….()….
아리수님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시니 근심 걱정이 도시에 사는
저희들 보다는 적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하시니 이렇게 선뜻 고마운 일도 하시는 것이겠지요.(^^*)
항상 몸도 마음도 편안하시고 지금처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주절주절 늘어 놓고 갑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좋은 이웃들 만나는 재미에 많이 좋아졌거든요 한동안은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었는데, 웃음을 찾아서 너무 좋습니다. ^^ 비가 온다는 주말입니다. 더운 날씨 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 ^^
감자산굿 맛있겠네요 ^^
사진에 저 아래쪽에 빨간색 열매 이름이머죠?
예전에 먹어봤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파는분들이 통없어서요 ^^
좋은주말되세요
오랜만입니다. 유키No님 –; ^^
사진에 이름을 안 붙였네요, 맨 아래 사진은 보리똥, 보리밥이라고도 합니다. 보리똥나무/보리밥나무 라고도 하는데, 보리수나무가 이름입니다. 토종 야생의 크기는 팥알 정도인데요, 이것은 개량종입니다. 크기는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됩니다. 맛은 야생의 것과 비슷한데, 떫은맛이 더 강합니다. 술을 담기도 하고, 숙성시켜 먹기도 하는데요, 천식에 좋고 여자분들께 좋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많이 따 먹었는데요, 요즘은 손이 안갑니다. 어쩌다 옛날 생각에 몇 알 따먹어 보지만, 이내 뱉어 버리곤 합니다. ^^ 그리고 요즘은 나무도 많이 없습니다. 제가 약한다고 잘라먹어서. –;
재미난 추억의 감자산굿이었네요. 요즘은 그것말고도 먹을거리가 많으니까
잊혀졌나봐요~ aryasu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뜨겁더라도요.ㅋ
네, 그때는 냇가에 모여 감자산굿하는 게 대단한 이벤트였습니다. 손도 입도 새까매져서 감자를 까먹었던 모습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잊히진 않겠죠.? 산골의 여름은 그래도 이겨낼 만합니다. 해발이 높아서 밤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싸늘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