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꽃, 산동백꽃 / 산골에도 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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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 갈 것만 같던 산골에도 봄이 찾아왔다. 산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게 생강나무(산동백)고, 눈 속에서도 순을 내미는 건 초오다. 며칠 전만 해도 보일 듯 말 듯하더니만 제법 껍질을 벗었다. 진달래도 껍질을 밀어내고 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우내 묵었던 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내고 새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눈이 내리기 전에 하다만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올해는 날씨가 안 도와줘서 고로쇠 철이 재미가 없었는데, 며칠 내로 정리하고 밭일을 해야 한다. 게으름이 병인 나로선, 딴 데 신경 쓸 틈을 안 줘야 한다. 그냥 두면 뒹굴뒹굴…, 뭐든, 하면 돼 라고 넘어가서 정작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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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을 접고서 시골로 내려왔을 때, 이른봄 새순이 돋는 시기가 참 좋았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무덤덤해지는데,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이끌어내서,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보통의 농사꾼은 이른 새벽에 하루 일을 다 한다는데, 비록 이벤트처럼 손에 꼽을 정도지만, 이른 새벽의 산골 모습이 참 예뻐서 작정하고 밭에 나갈 때가 있다. 본래 야릇한 늦가을의 햇살을 좋아하는데, 시골로 내려와선 지금 시기를 더 좋아한다.

씨앗을 넣고 순이 나기를 기다리고, 하루하루 자라나는 두릅을 보면서 꺾어야 할 때를 기다리고, 풀이 자라는 속도를 보면서 작업의 순서를 정하고, 높은 산에 걸리는 먹구름을 보고서 완급을 조절한다.

뭐든 내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일 것 같지만, 사실은 잘 짜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뿐이다. 수천 년 수만 년을 이어오면서 터득한 지혜를, 백 년도 못사는 나로선 거스를 힘이 없다. 그래서 하면 한 만큼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결정해야 할 것들이 분명해지는 이른 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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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형은 벌써 봄맞이 준비를 끝냈다. 눈이 쌓여 있어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옆에서 구경만 한 나는 지금부터가 바쁘다. 한철 잘 논(?) 보충을 순간에 다 해야 한다.

그렇다고 숨 고르기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고디 열흘 가나 중태 하루 가나.” 라는 말을, 멀리 가신 아버님이 자주 하셨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생각날 때 부지런 떨면 된다는 말이셨단다.

매년 두릅이 새순을 내미는 시기엔 많이 생각이 날 것 같다. 멀리 가시기 전까지 두릅을 캐다 심으셨다. 돈으로 바꾸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그리 열심히 옮겨다 심고 번식을 시켰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 맘을 알게 될 때쯤이면 나도 완전한 농사꾼이 되어 있으려나.

오후부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지금까지 눈이 내린다. 며칠 따뜻한 냄새가 나더니만, 꽃봉오리 터진 걸 알았는지 쉬지 않고 내린다. 올봄엔 심술을 많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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