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꼭대기엔 단풍이 내려왔다

오랜만에 상큼한 아침 햇살을 느껴 본다. 오미자 수확이 마무리되고 있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먼 산꼭대기엔 단풍이 내려왔다. 앞산 자락에도 하나둘씩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며칠 아침저녁으로 겨울 날씨 같더니만, 제법 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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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이면 가슴 한쪽이 아린 듯한 기억이 떠오른다. 논산 훈련소에서 기본 교육받고, 광주 상무대 시절 후반기교육을 14주 받은 뒤, 102보를 거쳐서 소양강에서 군선 타고 자대 배치받던 날이 9월 28일이다. 단풍이 들락 말락, 먼 산엔 제법 짙어져서 색이 변해 있었다. 딱 그때다.

군선에서 내려 60 트럭 타고 굽이굽이 돌아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선 곳에 차가 서더니만, 위병소를 보고선 소리를 질렀다. “10종 수령해라.” 다른 건 잊혔지만, 이 말 한마디는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 말을 이해하는 덴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혼자 떨어진 곳에서 2년 넘게 지내다 왔다. 동기들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곳에서 죽었지 않나 싶다(???). 1년쯤 뒤 혹한기 기동훈련 때 한번 만나곤 두 번 다시 못 봤다.

지지리 복도 없어서 첩첩산중 오지에서 자란 놈이, 또 그런 곳에 끌려가(?) 한 시절 보내고 왔다. 몇 년 동안은 그쪽 지날 일 있으면, 멀리 돌아서 다른 길로 가곤 했었는데, 내 군번을 인터넷이나 통장의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매일 사용하면서도, 이 번호가 어디서 나왔지 그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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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그때의 잔상에서 피식 웃으면서 시작한 아침은 내내 비실거리게 했다. 덕분에 멀리까지 배달 가는 일이 생겨서, 누렇게 변해가는 넓은 들을 보고 오는 행운도 생겼다.

며칠 다른 생각을 해도 된다. 추석 쇠고 나서 나머지 오미자를 이틀 정도 수확하고, 이삭줍기 일주일 정도를 하고 나면, 일 년 농사는 끝이다. 한두 달 맘 놓고 하고 싶은 일 하다가, 겨울에 다시 일 년 농사를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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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하게 밀려오는 아침 공기는 폐 속 깊이에 남아 있던 찌꺼기를 끄집어낸다. 난 왜, 이 구름 사진이 옴?자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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